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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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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군(烏山君)(오성군(烏城君)) 세기(世基)는 고려 중엽 출사하여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평장사(平章事)를 거쳐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다. 고려 인종(仁宗) 4년 5월(서기1126년 병오) 오산군(烏山君)을 수봉하고 화순현 팔판동(갱정리)에 입향하여 조정의 뜻에 따라 후삼국(後三國) 통일 후 지방에서 횡행하던 토호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왕권의 확립에 힘쓰시다 별세하시니 조정에서는 시호를 평장(平莊)이라 내리었다. 묘는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일심리 순곡 자좌에 있다. 서기 1956년(병신) 봄에 후손들이 협의하여 상석(床石), 망주석(望柱石), 인관석(人冠石), 광명석(光明石), 양마석(羊馬石)과 묘전비(墓前碑)를 갖추어 근견하였으며 비문은 안동권씨(安東權氏) 상규(相圭)가 지었다.

명가보(名家譜) 화순편(和順編)에 이르기를 화순에 한 묘가 있으니 예로부터 최정승(崔政丞) 묘라고 전해왔다. 표석은 없고 단지 사대석(莎臺石)만 남아 있는데 한쪽에는 효자 최 세기(孝子 崔 世基)라 쓰여 있고 관직은 불서(不書)하였으나 다른 한 쪽에는 봉오산군(封烏山君)이라고 쓰여 있다.

명가보(名家譜)에 다시 이르기를 최 언(崔 堰)은 서북면(西北面) 도감판관(都監判官)이요 자 계신(繼臣)은 봉상대부(奉常大夫) 전객령(典客令) 평장사(平章事)이며 자 영유(永濡)는 海州 목사(海州 牧使) 운운하였다. 그러나 세기(世基)와 계(桂), 언(堰)과의 계대를 확인할 수 없어 그간 발간된 족보에서는 세기를 원조로 표기해왔으나 오산군 입향 시기와 득관 경위가 분명하게 밝혀졌으므로 이번 수보에서는 오산군(烏山君)을 우리 화순최씨(和順崔氏)의 시조로 표기하기로 한다.